보여주기 위한 열매

2005. 3. 24. 12:39Bravo My Life/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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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천리안 문학동호회/가을이
국민학교 4학년 때 일이다.
미술 경연 대회가 열렸는데 기회가 되어 참가하게 되었다. 학교 수업도 빠지고 대회가 열리는 행사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대방동에 있는 공군 사관 학교였다. 말로만 듣던 '공.사.'에 처음 와본 난 그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챙겨온 김밥을 까먹고 비가 조금씩 뿌림에도 불구하고 빨리 그리고 놀기 위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대충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과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훈련하는 사관 생도들의 모습도 보며, 전시된 비행기도 구경하며 이곳 저곳을 서성댔다.
연못 근처에서 돌을 던지며 물고기에서 장난을 걸고 있을 때 한 친구가 허리를 콕콕 찌르며 얘기했다.

" 동윤아! 저기 봐. 저기 저 아저씨들 보이니? "

아무런 생각없이 바라본 연못 건너편에는 제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악기를 들고 동요를 연주하고 있었다. 어렸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멋있어서 한참 동안 멍하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저 멋진 아저씨들은 과연 누굴까? 몇 년이 지난 후 그 사람들이 군악대 였다는 걸 깨달았지만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제복의 환상은 버릴 수 없었다.

십여 년이 지난 그때의 그 아저씨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멋지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그 빨간 예복의 주인공이.
처음 연주병으로 보직을 명 받았을 때도 환상은 여전했다. 그 행사복을 입고 멋진 행사모를 쓰고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곳에서 의시대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건방진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 환상은 얼마 안가서 깨지고 말았다. 밀려드는 악기 연습을 비롯하여 의식곡과 행진곡을 밀려드는 아픔 속에서 외워야만 했고 분열 연습 또한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그런 건 쉬운 거였다. 모든 생활 자체가 군기 였다. 보행시에도 45도 보행을 했고, 줄을 서 있을 때도 정확한 오와 열을 강조했고 몸 풀라는 얘기가 없을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정신교육이나 버스 등을 타고 이동할 때도 전혀 졸 수가 없었다. 그걸 위반했을 때 뒤따라오는 대가는 상상할 수 가 없었다. 나날이 괜히 왔다는 회의감만 쌓여 갔다.

처음 행사를 나갔을 때는 정말 잊을 수 없다. 첫 행사에 임석상관이 '스타'였던 것이다. 그것도 두개나 되는.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고참들은 뒤에서 갈구고(?) 꽉 낀 행사모에 머리는 아파오고 더군다나 무거운 악기라 생각이 없어진 건 오래였다. 내 얼굴은 허옇게 변해만 갔다.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부동 자세에 철저한 제식... 악기 올리고 내리는데 제식이 있다니 ... 그런 생각을 하며 무사히 행사를 마쳤다. 장성급 행사는 군악대에서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실수란 전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평시에 그렇게 군기를 잡았던 것이다. 부동자세며, 제식이며 조는것 까지도. 잘못되었을 때 누구도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8월에서 10월의 거의 죽음의 달이었다. 섭씨 30도 이상을 넘나드는 더위속에 퍼레이드를 위한 준비를 하느라 밤낮 없이 연습을 해야 했다. 가요와 관악곡의 악보를 외우며 퍼레이드 대형 연습을 하며 분열 연습을 하며 내려 쬐는 땡볕 속에서도 그걸 마다할 수 없었다. 단지 몇 번의 퍼레이드를 위해 그 더위 속에서도 밤낮없이 연습을 하고 하며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빠지는 살에 항상 떠나지 않는 피로는 꼭 이렇게 까지 해야만 하나 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서
떠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퍼레이드를 마지막으로 마친 건 부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국민학교 에서 였다.마지막 '위대한 전진'이란 곡을 부르며 분열을 하며 나올 때 손 흔들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난 잊을 수 없다. 눈가에 눈물이 여울지는걸 느끼며 살며시 손을 들어 보였다. 가슴 찡했던 그 때의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군악대에와 느끼는 진정한 보람이라고나 할까. 힘들었던 날들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지금은 제대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반민간인이 되었지만 그 때의 내가 겪었던 모든 어려움과 아픔, 고통에 대해 누굴 원망하거나 후회하진 않는다.

누구에게 선물하는 열매뿐만이 아니라 내 자신이 커나가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줬음을 확신할 수 있다. 열매를 맺기 위한 일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럽다 는 것을 이젠 이해할 수 있고 또 감히 말할 수 있다.

오늘밤 유난히 손흔들던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이 생각난다. 그들도 그 옛날 나처럼 그런 꿈을 꾸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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